목포의 역사

지명유래 - 동명유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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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동

오늘날에는 제일 비싼 땅이 되었지만 죽동은 개항되기 전에는 해변이었으며 개항된 후 선창의 노동자들이 팥죽을 많이 사먹는 죽거리였다. 그래서 죽동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개항때 애환이 많이 서린 동네이다.

 

죽교동

죽교동(竹橋洞)에는 원래 무안현 신죽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유달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었다. 이 신죽동의 죽자와 쌍교동의 교자를 한자씩 따서 죽교동으로 불렀다.

 

중동

본래 목포 개항지의 지역으로서, 목포항의남쪽 개펄을 간척하여, 일인의 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일본인들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목포대, 본정통, 산수통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중정 1정목,2정목이라 하다가, 광복후 1948년 4월 1일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정을 동으로 고치고,1949년 동제실시에 따라 만호동회의 관할이 됨.

 

중앙동

본래 목포 개항지의 지역으로서, 목포항의 서남쪽 개펄을 간척하여 일인 거류지가 되었는데,1914년 일본인들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영사관통, 목포대,본정통, 산수통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본정 1정목, 2정목 ,3정목이라 하다가, 광복후 1948년 4월 1일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정을 동으로 고치고, 1948년 동제 실시에 의하여 유달동회의 관할이 됨.

 

창평동

본래 무안군 보내면의 지역인데,1914년 일본인들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동, 남교동, 신창동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창평동이라 해서 목포부에 편입되었는데, 광복후 1948년 4월 1일 왜식 동명 변경에 다라 정을 동으로 고치고, 동제 실시에 의하여 호남동회의 관할이 됨.

 

축복동

본래 무안군의 지역으로서, 목포항의 동쪽 개펄을 간척하여 일인 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일본인들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해안통 4정목,5정목 병합하여 축정 1정목, 2정목 , 3정목이라 하다가, 광복후 1948년 4월 1일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정을 동으로 고치고, 1948년 동제 실시에 의하여 영해동회의 관할이 됨.

 

충무동

일1966년 1월 1일 동제 변경에 따라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수군진을 기념하여 충무동회가 되어 달동, 눌도동의 2동을 관할함.

 

측후동

측후동은 오늘날의 기상대, 당시 측후소(測候所)가 있어 측후동이라 하였다. 이 측후소는 개화기 초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 기상업무의 시초를 이루었고, 오늘날 서울 기상청의 초창기 연혁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항동

개항후 매립을 하여서 이루어진 곳으로 항구의 동네라고 항동이라 했다.

 

행복동

본래 목포 개항지의 지역으로서, 목포항의 동쪽 개펄을 간척하여 일인 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일본인들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해안통 2정목, 3정목의 각 일부 지역을 행정 1정목, 2정목이라 하다가, 광복후 1948년 4월 1일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정을 동으로 고치고, 1948년 동제 실시에 의하여 유달동회의 관할이 됨.

 

호남동

이동의 이름도 개항후에 일본사람이 붙인 이름인데 목포에 철도가 1914년에 완공되어 개통되었으나 지금의 대성동과 호남동사이의 넓은 시가지는 물이 고인 개펄 그대로였다. 마치 호수처럼 되어 있었는데 이곳이 완전히 매립된 것은 1920년 깨였다. 처음에는 개벌동이라 불렀으나 호수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호남동으로 이름을 지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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