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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굴

창꽃이라고도 불려지는 하당 뒤 갓바위 앞산에 위치한 굴로서 창굴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이 굴안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어 스님 한 사람이 먹을만큼 쌀이 나와 그 쌀로 하루하루 생활해 오던 차에, 하루는 이곳에 찾아온 스님이 있어 더 많은 식량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부지깽이로 구멍을 쑤시었더니 구멍이 막히어 매일 나오던 쌀도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당소나무

하당 뒤에 큰산이 있는데, 그 산꼭대기에 큰 소나무 하나가 있었다. 매립지가 많은 목포에서는 산을 깎아야 하는데 옛날부터 내려온 미신이 많아서 많은 사람이 꺼려했다. 하루는 동네 청년이 그 산에 놀러갔는데, 그 소나무 뿌리가 신기하고 예뻐서 그 뿌리를 뽑았다가 뒤로 총각이 집에 와서 쭉 드러누웠다. 부모가 굿을 해서 물어보니까 소나무 뿌리 때문이라고 하여 얼른 다시 묻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 그후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소나무에 손대기를 꺼리게 되었고, 일전에는 목포시에서 나무를 베어내야 하는데 하려는 사람이 없어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쇠섬

목포 북항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2마일 떨어진 곳에 쇠섬이라는 섬이 있다. 이 쇠섬에 관한 전설은 몇 가지가 있는데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그 중에 하나를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 아버지와 어린딸이 어머니 없이 살고 있었다. 어느덧 어린 딸은 성숙해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딸에게 결혼하지 말고 아버지와 오래 오래 살자고 청혼을 했다. 그래서 딸은 '그와 같은 소행은 소나 돼지 같은 짐승이나 하는 행위지 사람이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느냐?' 고 따져 물었다. 그리고 '정 아버지가 그러한 생활을 하시려거든 옷을 벗은 채 나체가 되어 '음머음머' 하고 소 우는소리를 하면서 이 섬을 세 바퀴 돌고 오시오'라고 했다. 이에 아버지는 쾌히 응낙하여 옷을 벗고, 소 울음소리를 내고 돌아왔다. 그러나 불쌍한 딸은 이미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하여 그 때부터 쇠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보리마당의 유래

유달산의 「일등바위」와「이등바위」사이의 능선에 「보리마당」이 있다. 옛날에는 이 주변이 보리밭이어서 이 곳에 와서 보리타작을 하게 되어 보리마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유달산에 봉수대가 있었을 때 봉수대를 관리하던 둔전병들이 보수로 준 둔전일결을 지급받은 밭곡식을 타작했던 터라고 전해온다. 그러나 사실은 유달산 봉수 봉졸들이 지내던 초소터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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