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역사

전설/설화 - 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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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도 전경사진. 파란 바다와 어루러진 빨간색과 흰색의 큰 다리가 섬들을 이어주고 있는 사진

삼학도는 유달산과 함께 목포의 상징적 존재다. 지금은 육지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옛날엔 배를 타고건너가 유희를 하고 사랑을 다짐하던 공원과도 같은 항구의 섬이었다. 당시 섬의 넓이는 동쪽의 가장큰 섬이 약43,000평이고, 가운데섬이 13,000평, 서쪽섬이 7,000평으로 제일 작았다. 이 섬은 목포 만호청의 땔나무를 했던 곳이다.

이 관계로 일반의 출입이 통제되어 갖가지 고목이 울창하여 사시사철 푸른숲이 하늘을 뒤덮고, 무심한물새들만 넘나들어 지저귈 따름이었다.

1897년 목포항이 일본인에 의해 개항되자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고 외국 문물과 잡화 등이 성업을 이루었다. 삼학도에는 역시 사람이 들어가 살았다.

1928년 유달산이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이 섬에도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낚시와 놀이를 즐겼었다. 지금은 제방을 쌓아 육지가 되어 섬 북단에 있는 갓바위일대는 과수원이 많은 녹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낚시터로도 애용되고 있다. 이 섬들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6·25직후인 1954년의 일이다. 목포항이 비좁고 대형선박의 정박이 어려웠기 때문에 10,000톤급 이상의 선박을 정박시키고자 신항공사를 착수했다. 3년만에 삼학도는 육지가 됐다.1962년에는 이로면 입암리와의 사이가 매립되어 완전히 섬으로써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

이 섬은 모습이 학처럼 보여 삼학도라 불리워졌다. 하지만 삼학도라는 이름에 대해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기품이 당당하고 이목이 수려한 젊은 장사가 유달산에 홀로 살고 있었다. 때로는 시와 노래를 읊조리고 칼쓰기와 활쏘기를 하면서 어느 누구와 사귀려 하지도 않고 두문불출 수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 유달산 밑에 갯마을이 있는데, 이 갯마을에는 아주 예쁜 처녀 셋이 살고 있었다. 이 세 처녀는 산밑 우물가로 종종 물 길러 오는 이 낯선 젊은이에게 제각기 짝사랑으로 가슴을 죄게 되었다. 서로 산 위에까지 물을 길어다 주는가 하면 빨래를 해주거나 밥을 해 주는 등 온갖호의를 베풀며 서로가 사랑을 전하기에 바빴다.마을 사람들은 그를 왕자라고 했지만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다만 세 처녀는 자신들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수도를 위해 이 산에 들어온 젊은이는 세 처녀의 친절과 유혹에 견딜 수 없었다. 드디어 젊은이는 굳은 결심을 하고 세 처녀를 불러 간곡히 부탁했다. '저의 젊은 꿈이 깨지기 전에 멀리 떠나 주시오' 진정으로 젊은이를 사랑하던 세 처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을을 버리고 멀리 떠날 것을 다짐했다. 새벽을 틈타 작은 배에 오른 세처녀는 포구를 떠나며 눈물어린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정들었던 마을과 그들의 가슴을 메이게 한 산 기슭을 향하여 멀리 산 위에서 이 처녀들의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 청년은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처녀들을 보내버리고는 수도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신도 사랑에 빠져 있음을 발견했다. 젊은이는 소리쳐 세 처녀를 불렀다. 떠나지 말고 돌아오라고 목이 메어 불렀으나 청년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인지 세 처녀를 실은 배는 점점 멀어져 갔다. 산을 뛰쳐 내려와 바닷가에 서서 뱃전을 향해 활을 쏘았다. 활에 맞아 구멍이 난 배는 가라앉아 버렸다. 청년은 애타게 세 처녀를 부르며 바다에 뛰어들어 가라앉는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청년이 그곳에 당도하기도 전에 세처녀는 학이되어 하늘로 올랐다. 학이오른 자리엔 나란히 섬 세개가 생겨났다.청년은 울면서 산에 돌아와 삼학도를 바라보며 이는 하늘이 자신을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열심히 수도하여 큰 장수가 되었다. 이리하여 삼학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설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수도했다는 젊은이가 도승도 되고 장수도 되고 선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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